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둑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 '승부' 후기

by 후니 극장북 2025. 7. 25.

승부 바둑영화 포스터

바둑을 전혀 모르는 제가 재밌게 본 영화 '승부'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바둑 몰라도 몰입되는 스토리

처음에 이 영화가 바둑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사실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바둑을 잘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바둑이라는 주제가 영화로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몰입감이 강했고, 스토리 전개 자체가 탄탄해서 바둑을 전혀 몰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인 조훈현 9이창호 9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합니다. 두 인물의 관계, 성장 과정,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대결 구도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룹니다. 영화는 과거 조훈현이 전설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 제자인 이창호가 스승을 넘어서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전개됩니다. 복잡한 플래시백 없이 흐름이 깔끔해서 이해하기 쉬웠어요. 바둑을 하나도 모르는 저도 보면서 대국의 흐름이중요하다’, ‘지금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들의 표정과 분위기 덕분이었습니다. 무슨 수를 두는지는 몰라도, 그 수가 가진 무게감은 느껴졌어요. 특히 감독이 인물의 손의 떨림, 초조하게 떠는 발, 숨을 내뱉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자주 보여주는데, 이런 디테일 덕분에 보는 내내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바둑의 룰을 알았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긴 해요. “아 저 수가 말도 안 되는 수구나!”, “이건 역전이네!” 같은 걸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겠죠. 하지만 바둑에 대한 지식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오히려 영화가 끝난 후엔 바둑 룰을 검색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스토리의 힘이 강했습니다.

 

유아인·이병헌의 밀도 높은 연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남았던 건 배우들의 연기였습니다. 이병헌이 조훈현 역, 유아인이 이창호 역을 맡았는데요. 두 사람 다 캐릭터에 정말 깊이 몰입해서 연기했고, 그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이병헌은 역시 이병헌이었습니다. 바둑계의 전설이자 스승인 조훈현을 묵직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해냈습니다.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제자를 아끼는 내면이 보이는 장면들에서, 말보다 눈빛과 숨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는게 인상 깊었습니다. 한 장면에서는 아무 말 없이 바둑판을 바라보며 손끝을 꼼지락거리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반면 유아인은 이창호라는 캐릭터의 섬세함과 내면 갈등을 정말 잘 표현했습니다. 천재 소년이지만 스승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스스로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 그런 복잡한 감정이 연기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스승과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장면에서 무릎이 떨리고, 입술을 꾹 다무는 모습, 그리고 결정적인 수를 두기 전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는 장면은 정말 긴장감을 부각시키더군요. 이 두 배우의 대결 장면은 마치 액션영화의 액티브한 스포츠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말은 거의 없는데, 눈빛과 미세한 손의 움직임, 흐르는 땀, 긴장한 표정에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어어요. ‘바둑 영화라고 하기엔 연기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몸짓 하나로 전하는 승부의 긴장감

바둑이란 스포츠 자체가 굉장히 정적인 게임이잖아요. 말 없이 앉아서 바둑알을 놓는 게 다인 경기인데, 이걸 영화로 만들어서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승부는 이걸 제대로 해냈습니다. 바둑판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보다도, 그걸 지켜보는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이 먼저 갑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손의 미세한 떨림, 바둑을 꼭 쥐는 손가락, 초조하게 까딱이는 발끝, 연신 손가락을 흔드는 습관 같은 몸의 언어를 통해 긴장감을 전달합니다. 또한 바둑알을 바둑판에놓는 소리, 시선의 교차, 정적이 흐른 뒤 누가 먼저 다음 수를 두는가 같은순간들이 굉장히 리듬감 있게 편집되어 있어요. 소리와 간격, 인물의 미묘한 움직임들이 이어지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이 순간이 중요하구나를 인지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창호(유아인)가 조훈현(이병헌)과 공식 경기에서 마주하는 마지막 대국 장면이었어요. 두 사람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시작하지만, 중반부터 조용히 무릎을 두드리거나 손을 움켜쥐는 행동으로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를 두기 전 숨을 들이마시고 멈추는 순간, 관객들도 숨을 멈추게 되죠. 이처럼승부는 화려한 기술이나 대사 없이도, 배우들의 신체 언어와 리얼한 연기를 통해서 충분히 극적인 장면들을 완성해낸 작품이었습니다.

조훈현 포즈 따라하는 이병헌

 

영화승부는 바둑이라는 정적인 스포츠에 소재를 다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관계, 경쟁,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바둑을 전혀 몰라도 충분히 감정이입하며 즐길 수 있었고, 룰을 조금이라도 알고 봤다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연기, 구성, 연출 모두 만족스러웠고, 특히 이병헌과 유아인의 감정 싸움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바둑에 관심이 있든 없든, 한 편의 잘 만든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